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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G란

LPG 특성 LPG 역사 생산방법 생산용도 저장방식

LPG 역사

LPG는 땅속에서 원유나 천연가스를 추출할 때 부수적으로 나오는 수반가스(Associated Gases)를 정제/분리공정을 통해 회수하여 가압하거나 냉각시켜 수송이 편리하도록 액체상태로 만들어 이용하기 시작한 연료입니다.

이러한 수반가스를 제대로 회수하여 사용할 줄 몰랐던 때에는 석유 채굴 시에 유정(油井)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가스를 그대로 공중에서 태워 없애거나 유전지대의 지하압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유정을 통하여 다시 땅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러다가 석유의 가치가 높아지고 경제의 석유지배 시대가 지속되자 자연히 석유가스에도 관심을 쏟게 되고, 또한 LPG가 열효율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고급 에너지 자원임이 밝혀지자 수반가스를 분리 회수하여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액화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기술이 급속히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때 유럽 선진국에서 "불타는 샘"이니, "영원한 등불"이니 하고 감상적 호칭으로 불렀던 유전의 수반가스…, 그러나 이제는 "청정연료", "무공해 에너지"로 환영 받는 "문명에너지"와 "고급 현대에너지"로서 애용되고 있습니다.

  1. 국내 LPG의 태동

    LPG는 구미 선진국에서 높은 연소특성이 알려져 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40년대 중반부터 그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59년 주한미군의 병영에서 유출된 LPG를 소수의 부유층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제1공화국 말기의 정치 혼란상황에다 생활 수준도 낮아 저개발 후진국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사용되는 신 연료라는 호감은 끌었으나 희소성에 따른 높은 가격과 생활 관행으로 인하여 널리 보급되지 못하고 일부에 한하여 국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는 1960년대 초에 처음으로 대규모의 수출용 LPG 회수/가공 공장을 건설하고 해외에 수출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대부분을 일본이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전쟁의 특수로 경제를 부활시킨 일본은 LPG의 사용이 활발해지고 도입량이 점차 증가하게 되어 그 무렵 국제교역을 확대 시키고 산유국들로 하여금 수출용 LPG공장의 건설을 촉진시킬 만큼 세계 최대의 LPG 수입국으로 부상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인접했기 때문에 1960년대 들어서면서 차츰 일본으로부터 LPG가 유입되어 일반인에게 전파되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취급물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그 용도도 일부 부유층의 가스난로에 한정되었습니다.

    LPG의 편리성과 우수성이 대중에게 전파되어 사용량이 점차 증가하게 되자 이의 장래성을 내다본 국내 가스 판매업자들이 수입을 추진하기 시작하여, 1961년에 “대한와사산업주식회사”는 일본의 岩谷산업과, “제일가스회사”는 出光석유와 “문화가스회사”는 丸善社와 각각 수입계약을 체결하였고, “고려압축사”는 “문화가스”와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시장에 판매를 시작하였으며, 이때 이들 4개사의 연간 총 판매량은 400~500톤 내외였습니다. LPG의 수입형태도 LPG가 충전된 용기를 수입하는 방식이고 사용 후 빈 용기를 다시 일본으로 반출했다가 재충전된 LPG용기를 다시 수입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른 연료에 비하여 월등히 비쌀 수밖에 없었으며 일반인은 감히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고 사치품으로 간주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때까지의 국내 가스제조업체들은 석탄을 원료로 한 석탄가스, 코크스, 콜타르 등을 생산하여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주 소비계층이던 일본인들이 패전과 더불어 철수한 후 수요가 급감하고, 한국전쟁으로 시설마저 피폐하여 현상유지가 매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시설변경을 통하여 LPG로의 전환을 시도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공개매각을 통하여 처분되었으며 이로써 석탄가스도 우리 생활에서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었습니다.

  2. LPG 수입사의 등장

    청정성을 기반으로 대중성을 띤 새로운 생활열원으로의 LPG 등장은 대세의 흐름과도 같이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4년 대한석유공사의 정제시설 건설가동으로 시작된 LPG 국내생산은 1969년 호남정유와 1971년 경인에너지의 원유 정제시설 건설과 가동으로 계속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한때 생산/공급량이 수요를 앞질러 잉여분에 대한 수출이 이루어 지기도 하였으나, 1971년 용산구 이촌동에 LPG/Air 방식의 가스 공급을 필두로 도시가스 설비를 통한 본격적인 공급이 시작됨에 따라 날로 확장되어 LPG사업이 역사성과 긴요성으로 보아 자랑스러운 신 업종이자 유망한 단일 신종사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를 야기시킨 1, 2차 석유파동은 유가의 급등과 사회전반의 물가고 확산을 몰고 왔으며 우리 경제의 에너지 수급구조에도 변화를 일으켰으나 대중보급의 여건을 갖추지 못하고 한정유통에 그쳐왔던 고가 에너지인 LPG가 보다 쉽게 일반인에게 다가가는 요인이 되었으니, 그 중 첫 번째가 중동 산유국에서의 LPG생산 공급시설의 대폭 확장이었으며, 두 번째로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괄목할 만큼 성장하고 국민경제가 윤택해지자 편리하고 깨끗한 LPG를 사용하려 하는 잠재적 수요가 증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LPG는 열에너지 부문 외에도 나프타 등과 마찬가지로 석유화학공업의 중요한 기초원료 품목이기는 하였으나 1978년을 전후한 시기까지는 공업용 LPG의 수요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부터가 문제였습니다. 정부 주도의 경제계획 추진에 따른 석유화학 공장들의 설비 증산이 이루어지고, 산업화에 박차를 가함에 따라 나프타의 예상 수요는 갑자기 두 배 이상 불어나 대량공급이 요구되었으며, 정부는 다각적인 검토와 심각한 협의를 거쳐 고육지책으로 석유화학 부문에서는 대성메탄올을, 비료 부문에서는 남해화학을 지목하여 나프타의 원료전환을 종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따라 나프타를 대신해 새 원료의 대상품목으로 LPG, 가스오일(디젤유), 벙커C유, 석탄 등이 검토되었으나 LPG가 가장 적합한 원료인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대성메탄올에서는 LPG Project Team을 구성하여 정부와 공동으로 기초조사와 더불어 에너지원의 안정조달과 석유화학 원료의 안전성 확보방안을 강구코자 다각적인 대책을 모색하였고, 그 결과 정부로 하여금 에너지원 다원화 정책을 통하여 안정된 산업발전을 이룩해 나가기 위한 정책의지의 방향조정에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1980년 4월 24일 LPG사업 전담회사로서 "대성에너지주식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국내 최초의 LPG수입 전문회사가 탄생되었으며 바로 이 회사가 주식회사 E1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그 후 1980년 10월 2일 경제장관협의회에서 [가스도입에 관한 기본방침]을 확정하였으며 이 기본 방침은 크게 네 가지 사항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스도입에 관한 기본방침

    1. 첫째, 대규모 가스도입사업, 곧 LPG와 LNG 도입 사업을 에너지원 다원화 정책의 일환으로 채택하여 적극 추진한다.
    2. 둘째, 사업추진의 주체로는 LPG는 대성 에너지가, LNG는 한국전력이 각각 맡아서 하도록 지정한다.
    3. 셋째, 여기에 필요한 건설자금은 국민투자기금에서 융자하여 조달하도록 한다.
    4. 넷째, 두 도입 사업의 전용 하역부두는 정부가 지원하여 건설하도록 한다.
  3. 대성에너지로부터 주식회사 E1까지(LPG수입전문회사)

    대성에너지주식회사는 1981년 초에 대주주인 신동아그룹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LPG사업을 포기하기로 함에 따라 그 진로가 갑자기 흔들리게 되었으나 정우개발㈜가 인수함으로써 사주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경영주가 바뀌며 새 출발하게 된 대성에너지는 본격적인 인수기지 건설에 착수하여 여수의 수입기지와 인천의 분배기지에 대한 기공식을 1981년 7월 15일 동시에 거행 한 후 동양에서는 최초의 지하저장 기지이며 단일규모로는 세계최대의 지하암반 LPG저장기지를 1983년 6월 30일 여수에서, 구형 저장탱크 6기로 구성된 지상기지를 1982년 6월 9일 인천에서 각각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여수 인수기지의 준공에 앞서 첫 항차분 LPG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982년 1월말 선적을 완료하고 출항하여 약 20일 간의 항해 끝에 1982년 2월 17일 인수기지 건설현장이 마주 보이는 남해도 부근 정박지에 닻을 내리고 여수 인수기지가 완공될 때까지의 약 17개월 동안 정박하면서 떠있는 LPG창고(Floating Storage)역할의 임무를 완수하였으니 국내 LPG 출하의 효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회사의 급속한 성장과 영업규모의 확장에 따라 단일 수입사인 회사의 LPG사업은 가일층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1983년 2월 5일 상호를 정우에너지 주식회사로 변경하였습니다.

    정우에너지의 LPG사업이 경영의 안정기반을 다져 갈 즈음 뜻밖의 경영난에 봉착한 정우개발은 정우에너지를 매각하여 사태를 수습하기로 하여 호남정유에 회사의 매도를 결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호남정유(지금의 GS칼텍스)를 비롯한 여타 4개 정유사가 공동 출자하는 형식을 취하되 주식지분의 51%를 호남정유가 보유하는 연합에너지주식회사가 1984년 9월6일 법인으로 등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대외적 이해도 및 LPG수입 전문업종의 이미지에 비추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여수에너지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여 재등기를 실시하고 호남정유의 자회사로서 정우에너지를 인수합병하는 절차를 수행하며 독립된 별도의 회사 법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합병계약은 양사의 주주총회 의결로서 최종 확정되어 단일 LPG수입회사로서의 모든 절차를 마무리 짓고 우리나라 LPG수입사업의 실수요자 공동참여, 수입창구 일원화, 공급의 안정 및 대외교섭력 강화라는 기치를 들고 새 출범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회사의 상호는 경쟁력 강화와 인식의 확산정책에 따라 호유에너지주식회사로 변경(1991년 12월5일)된 바 있으며, 1996년6월5일 LG그룹의 CI변경에 따른 LG-Caltex가스주식회사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2003년 11월 11일 LG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와 함께 2004년 3월 19일 주식회사 E1으로 변경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되었습니다.